나는 주변의 사물에서 단순한 모양의 패턴을 상상하곤 한다. 이를테면 논밭을 사각형으로 바라보거나 바나나를 휘어진 곡선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 비롯된 상상의 이미지들은 작업의 기본재료가 되어 새로운 형태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쓰인다. 이때 다양한 조건의 실험을 위해 그래픽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컴퓨터를 통해 설계된 가상의 이미지는 캔버스나 종이 위에 다시 손으로 그려 완성된다.

기본 도형 중에 동그라미와 사각형에는 원주율이나 루트2처럼 무작위적인 숫자들이 무한히 나열되는 비율이 존재한다. 이 비율은 논리적인 개념이지만 기하학을 통해 눈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눈에 보이게 하는 것은 결국에 신체의 감각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격 이상의 것을 경험하게 한다.

대칭과 순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특정한 구조가 다른 구조와 같은 모양으로 영원히 되풀이되는 성질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비대칭, 비순환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령, 하루하루가 반복적인 일상도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또 다르다. 대칭처럼 보이는 꽃잎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세계는 대략적으로는 예측하기 쉬우나, 그 세부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이 알 수 있음과 알 수 없음의 경계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알 수 없음으로 인해 생긴 호기심은 인류에게 지식을 쌓게 만들었다. 지식은 ‘세상을 보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눈의 감각과도 함께 연결되어 있다. 내가 바라본 풍경이 남이 바라본 풍경과 다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을 인지하는 경로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너와 나의 유사성(패턴)과 개성을 발견하는 것이 작업의 주된 전제라고 할 수 있겠다.

- 2018, 장철원

어린 시절 살던 곳은 창호문이 있는 집이었다. 방에 앉아 문살 사이로 햇살이 스며드는 장면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때로는 손가락으로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 바깥을 바라보곤 했었다. 당시의 창호문은 바깥을 바라보는 창이기도 했고, 안과 밖을 경계짓는 틀이기도 했다. 문살의 이미지는 매우 단순했지만 정교한 규칙을 지니고 있었다. 서까래, 마루, 기둥, 벽, 담, 이층장 등도 창호문처럼 비례와 대칭, 선의 반복이 있는 그리드 체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각인된 공간적인 이미지들은 세상과 나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는 하나의 매개자처럼 느껴졌다.

하루는 오렌지의 단면을 관찰해 본 적이 있다. 각각의 알갱이들은 자신만의 규칙을 가지고 배열되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중심을 향하여 구를 이루는 상호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씨앗이 있는 사과나 체리와는 달리 눈에 보이는 구심점(핵)은 없었지만, 오렌지는 오렌지만의 고유한 구성으로 하나의 구를 완성하였다. 이런 점에서 오렌지는 작은 지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형(球形)이라는 가시적인 형태의 유사성 외에도, 응집된 구성요소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개별적인 모양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또한 알갱이들이 하나씩 모여 완전한 오렌지가 되는 것처럼, 아주 복잡해 보이는 사물도 쪼개면 단순한 형태의 개체로 나눠진다. 이를 기하학적으로 도식화하면 삼각형이나 원의 기본도형이 만들어진다.

 

사물의 최소단위를 대변하는 각각의 도형들은 저마다의 모양, 크기, 거리와 각도를 가지고 있고, 한 화면 안에서 유기적인 구성의 방식에 따라 서로 중첩하며 또 하나의 개체를 만들어낸다. 어린 시절 작은 공간 안에서 바라보았던 기하학적인 이미지들과 사물을 관찰하며 그 구조의 형태를 공부했던 것처럼, 경험과 학습을 통해 습득한 수학적인 기호들은 작업의 기초가 되는 생각들을 확립한다.

- 2015, 장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