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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ro and Micro

어린 시절 살던 곳은 창호문이 있는 집이었다. 방에 앉아 문살 사이로 햇살이 스며드는 장면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때로는 손가락으로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 바깥을 바라보곤 했었다. 당시의 창호문은 바깥을 바라보는 창이기도 했고, 안과 밖을 경계 짓는 틀이기도 했다. 문살의 이미지는 매우 단순했지만 정교한 규칙을 지니고 있었다. 서까래, 마루, 기둥, 벽, 담, 이층장 등도 창호문처럼 비례와 대칭, 선의 반복이 있는 그리드 체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각인된 공간적인 이미지들은 세상과 나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는 하나의 매개자처럼 느껴졌다.

​하루는 오렌지의 단면을 관찰해 본 적이 있다. 각각의 알갱이들은 자신만의 규칙을 가지고 배열되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중심을 향하여 구를 이루는 상호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씨앗이 있는 사과나 체리와는 달리 눈에 보이는 구심점(핵)은 없었지만, 오렌지는 오렌지만의 고유한 구성으로 하나의 구를 완성하였다. 이런 점에서 오렌지는 작은 지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형(球形)이라는 가시적인 형태의 유사성 외에도, 응집된 구성 요소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개별적인 모양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또한 알갱이들이 하나씩 모여 완전한 오렌지가 되는 것처럼, 아주 복잡해 보이는 사물도 단순해 보이는 원자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원자를 비유적인 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내면 삼각형이나 원과 같은 간단한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사물의 최소단위를 대변하는 각각의 도형들은 저마다의 모양, 크기, 거리와 각도를 가지고 있고, 한 화면 안에서 유기적인 구성의 방식에 따라 서로 중첩하며 또 하나의 개체를 만들어 낸다. 어린 시절 작은 공간 안에서 바라보았던 기하학적인 이미지들과 사물을 관찰하며 그 구조의 형태를 공부했던 것처럼, 경험과 학습을 통해 습득한 수학적인 기호들은 작업의 기초가 되는 생각들을 확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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